사족으로 또 다른 마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천주교의 교황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1936년 생이며, 2013년 3월 13일 제 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이 분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입니다. 젊을 때 나이트 클럽 경비원으로 잠시 일한 경력이 있으며, 1969년에 사제서품을 받았고 2001년에 추기경이 서임되었습니다
교황에 선출된 이 분은 교황으로서의 자신의 새 이름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기리는 뜻으로 프란치스코라 명명하였습니다. 이 분은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의 교황이십니다.
교황 즉위 미사는 2013년 3월 19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교황청에 따르면 이날 즉위 미사에 6개국 국왕과 31개국 대통령, 3개국 왕자, 11개국 총리가 참석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문체부 장관이 사절단 대표로 참석했답니다.
교황 즉위 미사에 참석한 종교계 인사 중에서 가장 주목 받은 인물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였습니다. 동방 정교회의 지도자가 교황의 즉위식에 참석한 것은 1054년 가톨릭 교회가 동서방 교회로 분열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 합니다
프란치스코 이 분은 교황에 선출되자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나 같이 모자라는 놈을 교황으로 뽑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파격적 행보를 예고하는 듯한 발언으로 전 세계 천주교 신자들을 즐겁게 웃게 했고, 교황으로 선출된 자리에는 교황의 권위를 뜻하는 붉은 옷인 “모제타”를 입지 않고 등장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러한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는 교황청 개혁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2014년 12월 22일 교황청의 클레멘타인 홀에서 열린 연례모임에는, 바티칸에서 일하는 추기경, 주교 등 고위 성직자가 참석하였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연설을 시작하자 성탄 덕담을 기대했던 참석자들은 얼굴이 굳어졌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심한 듯 쿠리아(교황청) 관료주의가 앓고 있는 15가지 질병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최근 10년간 곪아온 문제해결을 위해 대대적인 교황청 개혁을 설파했답니다.
교황은 먼저 자기비판과 혁신이 없는 교황청은 병든 육체와 같다며 쿠리아는 자기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다고 경고하고, 이어 성직자 일부는 정신적 영적 동맥경화에 걸렸으며 그 과정에서 내적 평온과 생기와 용기를 잃었다고 개탄했습니다. 그리고 바티칸 관리들의 위선적인 이중생활과 권력에 대한 탐욕은 실존적인 정신분열증이라고 비판하고 권력에 눈 먼 성직자들은 영적 치매에 걸렸다고 분노했답니다.
그런가 하면 고국 아르헨티나가 있는 남미를 방문하면서 “모든 문화가 경제적 성장과 부의 창출을 필요로 하지만 정치와 기업 지도자들은 이윤이 부자뿐만 아니라 가난한자에게도 나누어 지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고, 돈은 남자와 여자를 노예로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어 우리의 공동체를 무너뜨린다”고 했습니다.
2014년 3월 미국의 유력지인 “포츈”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50인을 선정했고 그 중 1위에 프란치스코 이 분을 올려 놓았습니다.
이 분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항상 검소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고 사회적 소수자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관용을 추구하며 여러 가지 다양한 배경과 신념,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이 오갈 수 있도록 대화를 강조하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교황 이 분은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이탈리아 출신의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12살 때 아말리아 다몬테라는 여자에게 러브레터를 건네며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받아주지 않으면 신부가 되겠다”고 청혼 했다가 거절당했답니다. 그런데 아말리아는 60년이 흐른 2013년 그가 교황이 되자 기절초풍했답니다. 그녀가 자랑스럽게 공개한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에게는 사실상 청소년기에 탱고를 같이 춘 여자 친구가 있었다고 고백을 했답니다.
이 분은 지난해 이맘때쯤 천주교와 박근혜 대통령의 초대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 분은 공항에서부터 대통령 영접을 받고 전 국민의 환영을 받으며 입국했습니다. 불과 100 시간 한국에 머물렀는데 100년의 가르침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모든 언론과 전 국민의 관심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교황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교황이 직접 집전한 평화와 화해의 미사에 울려 퍼진 메시지는 통일에 대한 우리의 소원이었습니다.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큰 울림이었고 세월호 유가족을 안아주는 모습과 방명록에 남긴 조그마한 서명은 뭉클한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전의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에서 제기했던 “무한 경쟁 사조에 맞서 싸우고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을 거부하라”는 화두는 성장신화 중심의 우리경제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정부도 듣기 거북한 발언이었고,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들은 화 날법도 하지만 진심을 다해 공감하는 모습이 바탕에 깔린 발언이었기에 울림은 더 컸습니다. 이처럼 교황의 말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화두가 되었습니다.
교황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무기제조업자와 무기산업 투자자가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는 것은 표리부동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교황청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교황은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협상을 중재했습니다.
교황청은 기후 변화 관련 회칙을 내놓았습니다. 선진국들이 화석연료 사용을 자제해 생태적 빚을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미국의 CNN방송은 이번 회칙이 친환경론자인 민주당 후보들에게는 환영받고 있지만 공화당 후보들에게는 껄끄러운 주제라고 했습니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인류 전체에 영향을 주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하나가 되어 싸워야 한다고 교황을 지지했습니다.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라과이 등 남미 3개국을 방문한 교황은 볼리비아에서 원주민 사회운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식민지시대 가톨릭교회가 원주민들에게 중죄를 저질렀다며 사과하기도 했답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이 분에 대해 지상가상없이 너절하게 말하는 것은 이 분의 화두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입니다. 종교인의 생명은 화두입니다. 선사들은 서로 안부를 물을 때 화두가 성성합니까? 화두가 깨어 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화두에는 활구活句가 있고 사구死句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이 분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이 분의 살아있는 화두, 즉 활구活句에서 나옵니다.
이 분은 한국에서 활동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갈 때 세월호 유족의 눈물어린 고통의 “순례 십자가”를 바티칸행 비행기에 실었습니다. 교황은 방한 당시 세월호에 대해 많은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네 차례나 세월호 유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희망을 잃지 말라며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겼습니다.
지난 3월 로마 교황청을 찾은 염수정 추기경, 김희중 대주교 등 한국 천주교 주교단 일행 14명을 면담한 자리에서 교황의 첫 물음이 “세월호 문제”였다고 합니다. 사실상 세월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내내 화두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 이 분의 화두는 살아있는 오늘의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지난 결제 때 우리 스님들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無字 화두입니까? 본래면목입니까? 아니면 뜰앞의 잣나무(前庭栢)입니까? 굳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두 천년 전 중국 선사들의 산중문답이니까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화두와 우리 선승들의 화두가 시간적으로 천년의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의 문제가 화두인데, 우리 선승들의 화두는 천 년전 중국 선승들의 도담들입니다.
프란치스코 이 분은 자기 혁신이 없는 교황청은 병든 육체와 같다고 비평하고 일반 성직자는 정신적 영적 동맥경화에 걸렸다고 개탄했습니다. 그러면서 바티칸 관리들의 위선적인 이중생활과 권력에 대한 탐욕을 실존적인 정신분열증이라고 비판하고 권력에 눈 먼 성직자들은 영적치매에 걸렸다고 분노했다는데, 우리는 이 분의 파격적인 발언에 대해 그냥 남의 교단의 일로만 들을 일이 아닙니다. 이 분의 발언을 통해 우리들 자신을 냉엄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평생 참선만 하시며 제방에서 존경받는 어느 노스님은 어린 시절의 저에게 “화두 들고 참선 공부하다가 죽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때는 “예”하고 대답했지만 그게 말이 됩니까?. 참선하여 빨리 깨달아 깨달음의 삶을 살아야지 참선하다가 죽어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 노스님은 고대 중국 선승들의 화두에 중독된 것이 분명합니다. 마약 중독자가 마약에 중독된 줄 모르는 것처럼 화두 중독자도 자기가 화두에 중독된 줄 모르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이 분이 지적한 바와 같이 나는 지금 영적 치매에 걸리지 않았는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해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한국에는 깨달은 선승들은 많은데 깨달음의 삶을 사는 선승은 만나기 어렵다고 합니다. 세간법은 허망하고 출세간법은 진실하다는 믿음으로 죽을 때까지 선원이나 토굴에서 참선만하고 살았다고 해서 깨달음의 삶을 산 것은 아닙니다.
심산유곡에서 절학무위한도인의 경지속에서 증도가나 읊고 차담과 도화를 즐기며 고담준론과 선문답으로 지내며 세속에 때 묻지 않고 초연하게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고 해서 깨달음의 삶을 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십년 장좌불와로 묵언정진했다고 화두를 타파하고 견성체험하여 생사에 걸림없이 무애자재하게 산다고 해서 깨달음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화두를 타파하면 부처가 된다고 합니다. 부처가 왜 존재합니까? 중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심의 근원은 중생심입니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가 필요 없습니다. 환자가 없으면 의사가 필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부처는 중생과 고통을 같이 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마치 세월호 유족들과 고통을 같이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선승들의 화두도 오늘의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우리 시대의 아픔들, 그 우비고뇌가 화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소위 선의 황금시대라는 7~8세기를 살아가셨던 혜능, 마조, 석두, 남전, 백장, 황벽, 조주 선사, 임제스님 등 의 삶과 그들의 전설적인 말들은 그들의 화두이고 그들의 삶일 뿐입니다. 사실 그들 시대 어록에는 살불살조! 부처있는 곳에 머물지 말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승들은 아직도 천 년 전 그네들의 도담에 머물러 있습니다.
화두는 선승들의 생명입니다. 내 화두는 내가 챙겨야 합니다. 천 여년 전 중국 신선주의자들, 산중 늙은이들이 살며 뱉어 놓은 말은 다 사구死句입니다. 내 삶은 내가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삶속에서 화두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깨달음의 삶입니다.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깨달음의 삶을 살다간 두 수녀님 이야기를 하고 들려드리겠습니다. 1959년 소록도에 20대 초반의 오스트리아 태생 수녀 한 분이 우연히 왔습니다. 이름은 마리안 수녀였습니다. 당시 소록도에는 전국에서 쫓기다시피 모인 환자가 6천 여명이었고, 심지어 어린이들이 2백 여명도 넘었습니다. 의료진도 부족했고 약조차 없었습니다. 마리안 수녀님은 이 환자들의 참상을 보고 소록도를 떠날 수 없었답니다. 이 환자들과 삶을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
수녀님은 오스트리아 지인들에게 호소하여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등에서 약을 구해 왔습니다. 3년 후인 1962년에 역시 오스트리아에서 마가레트 수녀님이 찾아왔습니다. 두 수녀님은 손에 장갑도 끼지 않고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이 두 수녀님은 2009년 9월 30일 “나이가 들어 계속 일할 수 없다. 부담주기 싫다”는 요지의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자기들의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갔습니다.
20대의 푸른 청춘으로 이 땅에 와서 60대 할머니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두 수녀님이 소록도를 떠날 때는 올때 가지고 왔던 가방을 들고 떠났다고 합니다. 두 수녀님이 떠날 때 바다조차 울었기에 소록도 전체가 울음 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종적을 남기지 않고 사는 삶이 깨달음의 삶입니다.
화두는 그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 사람이 오늘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여러분이 산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육도만행이라 합니다. 육도는 잘 아시는 것처럼 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 지혜바라밀을 말합니다. 만행이란 이 육바라밀을 실천궁행하는 만선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육도만행은 육바라밀을 모두 실천하는 만선의 걸음입니다.
해제라 하면 방학했다는 기분이 드는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난 3개월간 금족수행을 했다면 이제는 금족수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만행을 통해 다 보여줘야 합니다. 만행의 길에서 육바라밀을 다 실천해야 합니다. 육바라밀이 만행이 되고 만행이 육바라밀이 되어야 합니다.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준엄한 의지를 바탕으로 자강불식(自彊不息)의 지고한 생활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우리 시대 선승들의 본분입니다. 그야말로 선승들의 깨달음의 삶이 이 육도만행속에 다 있습니다. 이 육도만행이 선승들의 깨달음의 화두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부처의 삶을 사는 사람이 부처입니다. 부처의 삶을 살지 않고 그냥 부처가 되겠다고 죽을 때까지 화두 붙들고 참선해가지고는 부처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처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기 혼자 부처가 되어서 무엇합니까? 육도만행을 하십시오. 육도만행이 깨달음의 삶입니다. 장부의 출신활로(出身活路)입니다.
乙未年 夏安居 解制日
雪嶽 霧山